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A3 콘덴사토르-2P (문단 편집) == 짧은 운용 == 콘덴사토르는 1956년부터 레닌그라드 부근에 있는 루즈스키 포병사격장(Лужский артиллерийский полигон)에서 야전 조건을 재현해 시험이 시작되었으나, 여러가지로 문제가 많아 실제로 운용된 기간은 매우 짧은 것으로 알려진다. 이 중자주포는 다음과 같은 주된 문제점들이 지적받았지만, 당대의 기술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었다. * 차체가 과도하게 무거워 [[변속기]] 기어박스의 마모율이 지나치게 높다. * 사격시 일어난 강력한 반동으로 차체가 뒤로 몇 미터씩 밀려나 차탄 명중률이 낮다.[* 핵탄두를 사격할 경우는 별 문제가 아니지만 재래식 포탄은 탄도 수정을 할 수 없으니 명중시키기 어렵다. ] * 발사 충격으로 인해 각종 차내 설비들이 파손이 잦다. * 모의 실험 결과 핵탄두 발사시 차량 자체의 파손은 더 클 것으로 판단됨. 이 자주포의 운용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[[니키타 흐루쇼프]] [[서기장]]은 국방 개혁에 나섰고, 지상 발사식 핵무기는 [[스탈린]] 시대에 만들어진 중포병이나 중전차와 같은 시대에 뒤처지기 시작한 무기 체계로 평가되었고, 핵 타격력은 보다 효과적인 [[로켓]]과 [[미사일]]에 맡기는 방안을 추진해나간다. 공산당 각료회의는 다양한 시험이 행해지는 콘덴사토르 자주포를 지켜보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군사령부 예하 포병군단의 예비 무기로 돌려졌다. 4대의 콘덴사토르 자주포는 1960년에 퇴역한 것으로 알려지는데, 그중에 1대는 [[모스크바]]에 있는 중앙 무기군사박물관(Музей Вооруженных сил)에 옥외 전시되어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